부천YMCA 시무예배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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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YMCA 시무예배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1월 2일(화) 오전 9시, 부천YMCA 2024년을 시작하는 시무예배가 김영주 직전이사장의 인도로 시작하였습니다. 여는 시 '빛은 어떻게 오는가', 실천신학자인 본 회퍼 목사의 글을 노래로 만든 '선한 능력으로' 찬송에 이어 변종묵 재단이사장의 말씀 나눔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로 1부 예배를 마치고, 참석한 이사들의 덕담과 참가자들의 다짐을 통해 혼란한 사회 속에서도 YMCA 소명(Mission)을 마음에 품고 한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 (마가복음 4:35-41)
변종묵(부천YMCA 재단이사장)

다사다난했던 2023년 묵은 해가 지나가고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한민국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여러 가지 활동과 모임에 제약이 있었으며, 작년 2023년도 많이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코로나 여파가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겪는 일로 인하여 많은 것들이 멈추었고, 단절되었으며, 여러 고통과 어려움도 경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그 어려운 난관 속에서도 우리의 생은 계속되었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코로나로 인하여 긍정적으로 개선되고 변화를 경험한 것도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코로나"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회복된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다시금 도약과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신의 시대요 불신의 사회임을 토로하고 부정의 시각이 만연한 이 때, 여전히 우리는 주님의 은총과 위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주어진 삶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감사는 인생관이라 하셨는데, 참 맞는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온통 검은색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부천YMCA의 모든 형제자매들도 "감사"라는 렌즈를 끼고 주어진 삶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의 만남도 그런 의미에서 참 감사한 만남입니다. 우리의 사역도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감사한 사역입니다.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일에 대한 긍정으로 우리의 발걸음이 날마다 감사의 삶으로 이어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전에 이스라엘을 몇 번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팔레스틴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가 볼 수 없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성지를 꼭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거니셨던 곳을 직접 다녀보면 너무 와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갈릴리 호수는 제게 참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곳입니다. 특별히 대한민국 성도들을 위해서 주변 음식점에서는 "베드로 고기'도 준비해놓았더라구요. 나중에 꼭 가셔서 드셔보시기 바랍니다.
갈릴리 호수는 남북의 길이가 약 20km, 동서의 폭이 약12km, 최대수심이 50m로서 면적은 144평방km 나 되는 큰 담수호입니다. 그 곳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것이어서 갈릴리 바다라고도 부릅니다.
이 호수는 이스라엘의 심장이요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호수에 있는 물을 끌어다가 식수로 사용을 하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로 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황무지와 같은 척박한 땅을 이 갈릴리 호수의 물줄기를 통해 옥토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3년의 공생애 시간 대부분을 이 곳에서 보내시기도 하였습니다. 평상시에는 매우 아름다고 조용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 갈릴리 호수에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유는 갈릴리는 해수면보다 200m아래 있구요. 갈릴리 호수 위쪽에는 2814m나 되는 헐몬산이 위치해 있습니다.
낮 동안 뜨거운 햇빛이 호수 위에 내리 쬐이고 바람 한 점 붙지 않을 때, 호수 위에는 증발현상으로 인해 공기가 매우 희박해지게 되는데요. 저녁이 되면 호수 북쪽에 있는 찬 공기가 산바람이 되어 갈릴리 호수의 더운 표면으로 무섭게 내리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풍이 되어 이와 같은 사태를 만난 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오늘 읽으신 본문을 보시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첫 번째로 갈릴리 호수를 횡단하신 내용입니다. 35절을 보니까 "그 날 저물 때에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저 편은 어디일까요?
그 곳은 성경에서는 가다라 혹은 데가볼리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4장 다음인 5장 처음 보시면 바로 [거라사] 지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곳은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 아닌 이방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이 곳은 하나님 나라를 아예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특히 군대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 살면서 남에게 고통주고 자신도 고통받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코로나가 끝난 요즘의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안위, 자신의 인생,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남에게 굳이 관심을 갖지 않는 시대이지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국 나를 부르신 그 분의 음성을 좇아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쉬기 위하여 저편으로 건너가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이방 땅으로 친히 가십니다. 또 다른 사역의 무대요 꼭 만나야 할 영혼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 부천YMCA는 주님의 마음으로 모인 곳입니다.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구체화하고 그린 평화의 세상을 꿈꾸며 모인 이들이 우리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많은 이곳에서 머물러 있지 말고 주님을 전혀 모르는 그래서 주님이 꿈꾸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는 이들의 한 복판으로 가자”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일과 사역은 편한 세상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길을 돌아가더라도 때론 반대가 있더라도, 때론 박수쳐주는 이들이 없다 할지라도 정말 모두가 함께 이 땅에 있어야 할 존재의 이유를 알고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웃으며 살 수 있는 토대를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 편만 살기 좋은 것이 아니라 저 편도 살기 좋아지도록 우리로 하여금 "저 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사람은 익숙함에 참 잘 길들여집니다. 그러나 우린 그 익숙함을 버리고 낯설지만 주님이 주신 꿈을 따라 낯선 곳으로 움직이는 이들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과 가치는 믿는 이들하고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하고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신 세상이라 이야기하는 그 곳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편으로 건너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그 여정이 순탄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37절을 보니까 큰 광풍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메가톤급 광풍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름철마다 태풍을 만나보셨죠? 제 아들이 텍사스주에 살았는데요 허리케인이 불 때마다 저와 아내는 기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요 마태복음에서는 큰 놀 큰 지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태풍과 지진을 만나면 사람은 당황을 넘어서 무서워지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런 광풍을 만났으니 제자들이 탔던 배는 어떠했을까요? 제자들이 아무리 어부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 그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곤 그 배에 순식간에 물이 가득했고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파선의 위험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피곤하셨던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아우성이었지만 주님은 이내 일어나셔서 바다를 잔잔케 하십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몸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저 편으로 가자고 하신 의도가 결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여정 가운데 예기치 않은 어려운 문제가 찾아왔을 때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풍랑 앞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 그들은 결국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믿게 되는 것이지요.
두려움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 속에 금방 자리잡게 됩니다.
배는 물 위에 떠다닙니다.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비싸고 엄청나다 할지라도 그 배 안으로 물이 조금이라도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배의 말로는 분명합니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마음의 배에 두려움이 들어오면 이내 우리의 영혼과 마음은 침몰하게 됩니다.
우리가 한 해를 시작하며 부천YMCA의 사명을 다시금 새기며 세상 속으로 시간 속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시대와 상황과 사람들 속에서 여러 예기치 못한 문제들을 만나 두려움을 갖게 되면 우린 한 발자 국도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세우시고 우리를 붙드시는 그 분을 바라보는 우리존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한 해를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우리의 모든 것이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저 편은 사실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평화의 세상을 이루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냉소적이며 또 이런 일들을 하는 우리를 향해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지요 "왜 두려워 하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고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가 바라보는 그 세상이 분명하지 않으면 빛의 사명, 소금의 사명 감당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라 올 한 해도 나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들에게 "저 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저 편은 우리들의 사랑과 관심과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저 편은 이방인의 땅으로서 귀신들린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곳입니다.
저 편은 우리가 받은 사랑을 함께 누려야 하는 곳입니다.
건너가자고 하신 주님은 우리만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항해를 제안하시고 명령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그 분의 계획이 있지 않을까요?
부천YMCA의 우리 모두가 먼저 그런 신뢰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기쁨으로 시작하지만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항해의 과정 속에서 그 분이 이끌고 계심을 기억하면서 내어맡기는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가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올 한 해의 여정이 작은 발걸음 같고, 작은 손짓 같고, 아무 것도 아닌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결 국 이를 통해 이 땅에 평화와 생명의 공동체를 일구어가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의 눈을 뜨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시고, 아직도 힘겨워하고 신음하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마땅히 생명과 평화를 전하게 하옵소서 이 편에서만 머무는 이들이 아니라 저 편으로 항해 하는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더하시고 우리의 힘과 능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는 그 크고 담대한 믿음으로 2024년도에는 다시금 일어나 걷고 뛰는 전진의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